정찬 ㅣ 소설가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는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스마트폰을 일상의 필수품으로 쓰는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스마트폰이 출현한 것은 전화기가 발명된 지 131년 뒤인 2007년이었다. 이후 스마트폰은 삶의 공간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시킴으로써 4차산업을 견인하는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으키는 삶의 변화는 깊고 넓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언컨택트’ 환경이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파고들면서 ‘포노 사피엔스’의 생활혁명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포노 사피엔스를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이 인류 문명을 새롭게 쓰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포노 사피엔스 중추 집단은 1980년 이후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컴퓨터를 쓰고 자란 세대이다.
포노 사피엔스의 정체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모호하지만 아마도 나의 정체성 농도는 무척 희박할 것이다. 소설가를 수공업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수공업자는 포노 사피엔스가 추구하는 밝고 투명한 세계,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뻗어 나가는 세계와는 거리가 먼 존재다. 소설은 이야기이며 이야기의 원천은 기억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기억의 예술적 형상물이다. 기억은 과거의 시간이다. 소설가는 과거의 어둠에서 이야기를 캐내는 것이다. 이야기를 캐내려면 시간을 찢어야 한다. 소설가라는 수공업자는 포노 사피엔스의 밝고 투명한 세계를 찢긴 시간의 틈새로만 엿볼 뿐이다.
내가 전화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0살 때였다. 어느 봄날 저녁 집에 전등이 켜지지 않았다. 두꺼비집을 열어보았지만 퓨즈는 멀쩡했다. 다음날 어머니는 ‘한전’에 전화를 걸어 정전 신고를 하라면서 나에게 동전을 건넸다. 나는 동전을 손에 쥐고 동네 약국으로 갔다. 공중전화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동네 약국에서 수수료를 받고 전화기를 빌려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쪽지에 적어준 전화번호대로 다이얼을 돌린 뒤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댔다. 내가 불안을 느낀 것은 다이얼을 정확히 돌렸는데도 상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여전히 나오지 않자 나는 정전 신고와 함께 우리 집 주소를 또박또박 말한 다음 수화기를 내려놓고 약국을 나왔다. 그날 어머니가 손꼽아 기다린 전기 수리 직원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어머니가 나를 또 약국으로 보냈다. 수화기에서 여전히 상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전날과 똑같은 행동을 취한 뒤 집으로 향했다. 그날도 수리 직원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약국으로 걸어가면서 이번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어제보다 좀 더 오래 기다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날보다 더 오래 수화기를 들고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약국 아주머니가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수화기를 거꾸로 들었다고 말했다.
사람의 생애는 시간에 엮어져 어디론가 흘러간다. 시간에 관한 정의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끊임없이 서로를 넘나들며 영원히 지속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말이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간혹 처음으로 수화기를 든 ‘10살의 나’를 돌아보곤 한다. 수화기에서 상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내가 다이얼을 정확히 돌렸으므로 나와 상대가 연결되었다고 그 아이는 믿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말했고, 그 말을 상대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토록 허점투성이인 아이에게 어머니는 전화 심부름을 시키면서 수화기 드는 법은 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배웠거나, 오며 가며 사람들이 전화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을 테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글 쓰는 행위는 수화기를 든 10살 아이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모습과 흡사하다. 작가도 10살 아이처럼 침묵의 공간 저편에 있는 누군가가 ‘나’의 말을 듣고 있고, 그 말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 캄캄한 밤을 밝혀줄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 10살 아이에게는 수화기를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약국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작가에게 그런 존재는 없다. 밤의 어둠을 밝혀줄 전등의 불빛은 작가에게 영원한 미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