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전자현미경 사진이다. NIAID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인간의 장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기에 환자의 대변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장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장 또한 코로나19가 전파되는 추가 경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궉융유엔 홍콩대 신종감염병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가 박쥐와 인간의 장 오가나이드를 감염시켰으며 환자의 대변에서 채취한 바이러스 또한 감염력이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이달 13일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는 세포를 이용해 실제 장기처럼 조직을 만든 후 실험에 쓰는 ‘미니 장기’다.
연구팀은 우선 박쥐가 코로나19 장내감염을 일으키는지를 확인했다. 이를 위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와 유전적으로 96% 비슷하다고 알려진 박쥐 사스바이러스의 숙주인 관박쥐 오가나이드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중국적갈색관박쥐의 장내 상피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든 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감염시켰다. 그 결과 바이러스가 상당수 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인간 장내 상피세포를 이용해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같은 실험을 했다. 여기서도 박쥐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복제가 빠르게 일어났다. 인간에게서 장내 감염이 일어나는지 추가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설사를 일으킨 코로나19 환자의 대변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한 후 이 바이러스를 인간 장 오가나이드에 넣었다. 그 결과 대변에서 분리된 바이러스도 감염을 일으키며 바이러스를 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인간 장내 상피세포로 만든 장 오가나이드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 그 결과 바이러스(초록색)이 증식하며 오가노이드 곳곳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 메디신 제공
연구팀은 장내 상피세포가 감염될 수 있으나 바이러스가 구강을 통해 장까지 도달한 것인지 혹은 호흡기를 감염시킨 후 장까지 퍼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장에서 나온 바이러스도 감염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궉 교수는 “인간의 장내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정확한 경로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인간의 장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추가적인 경로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호홉기뿐 아니라 소화기 세포를 감염시키고 증식할 수 있다는 결과가 계속해 나오고 있다. 앞서 네덜란드 후브레흐트 연구소와 에라스무스대 등 공동연구팀도 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가 증식했을 뿐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에 맞서 싸우는 역할을 하는 인터페론 유도 유전자가 활성화됐다는 연구결과를 이달 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두 연구는 체외 세포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라 실제로 건강한 사람의 체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소화기를 전염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다만 두 연구팀은 연구결과가 코로나19 환자 일부가 소화기 증상을 보이고 대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사실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주장했다.
연구팀은 장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면 대변 검사를 통해 추가적인 환자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으로 봤다. 바르트 하그만 에라스무스대 바이러스학 교수는 “기침과 고열 등 코로나19의 전형적인 증상 외에 설사와 구토 등을 보이는 사람은 코와 목뿐 아니라 직장과 대변에서 채취한 검체로도 진단검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추가되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체 장기가 늘어가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대 연구팀은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 27명을 부검한 결과 감염경로로 알려전 폐와 기도 외에도 심장, 신장, 간, 뇌, 피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RNA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를 이달 13일 국제학 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발표했다. 유산한 임산부 1명의 태반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도 이달 1일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회지’에 발표되는 등 몸 곳곳에서 코로나19의 흔적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환자를 부검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아 한국인 중 다른 장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례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코로나19 환자 74명에서 얻은 혈청과 분변 등 총 699건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코로나19 유전자가 24건 검출됐다고 지난달 16일 밝혔다. 다만 배양검사를 했으나 분리된 바이러스는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