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문화부장
―봄별 참 곱다, 바람 참 달다.
"모기 들와유. 방충망에 빵꾸난 거 안 보여유?"
―기분도 거시기헌디, 장민호 버전으루다가 '연분홍 치마' 한번 불러줘?
"됐슈. 지는 호중이 팬이유."
―근디 뭘 그리 딜이다봐? 잠두 안자구?
"낙이 없응 게 테레비나 보지유."
―잠이 모지래면
늙는 속도가 세 배는 빨라진디야.
"빨리 죽으면 좋지유. 때마다
밥 안 해두 되구, 입 짧은 서방님 위해 철철이 김치 안 담가도 되구유."
―왜 또 삐딱한겨? 오늘 빨래두 돌렸는디.
"빨래는 공기방울 세탁기가 했지유. 은퇴하면 집안일은 도맡는다 큰소리치등마 눈만 뜨면 꽃단장에 마실이니, 워디 애인이라도 있능규?"
―노다지 저런 막장 드라마만 봉께 임자의 사상이 삐뚤어지는겨.
"한 남자 만나 콩깍지 쓴 그날부터 바람 잘 날 없던 내 인생이 막장이었슈."
―긍께 저 키만 껑충헌 눔이 젊은 여자랑 바람이 나서 김희애를 열받게
했다 이거 아녀.
"키만 껑충헌가유? 우유부단허지, 지리멸렬허지, 능력은 일두 없지."
―워서 많이 듣던 소린디.
"눈만 뚱그래서는 천지분간을 못 하구 이쁜 것들 뒤꽁무니만 쫓다가 인생 종친다는 얘기유."
―한쪽만 잘못했겄어? 여자가 너무 빈틈없구 대쪽 같어두 못 쓰는겨. 남자가 숨 쉴 틈을 줘야지.
"요즘 세상에 맞벌이하면서 아침밥까지 채려주는 여자가 어딨다구. 김희애가 내 딸이면, 한 끼 해장거리두 안 되는 저 눔은 내 손에 벌써 절단났슈. 깍두기 국물
맛 지대로 봤슈."
―그래두 배알은 있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 함시로 달려드는디?
"적반하장이쥬. 쩌~기 삼팔선 너머에두 그게 주특기인 사람 하나 살잖어유."
―딱풀이여? 갖다 붙이기는.
"한쪽이 죽자사자 퍼주기만 하면 사랑이 탄도미사일로 변해 내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능규."
/일러스트=양진경
―임자가 목석이라 그런디, 자고로 위대한 문학과 예술은 금지된 사랑에서 싹트는겨. 헤밍웨이, 피카소, 우디 앨런이 죄다 그 계열 아녀.
"그 사람들 자식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긴 못 들어봤슈."
―인생이 달콤하기만 한가? 허수애비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담 낫다는디.
"허수애비는 들판의 알곡이라두 지키지유.
자식들헌티 바람은 폭력이나 매한가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둔갑한 어른들 욕정에 애들만 희생되능규. 아닌 말루, 저런 찌질이가 드라마 속에만 있나유? 쓰리연고전 같은 디서 여자들 희롱하며 낄낄대던 것들두 한통속. 어쩌다 잡놈만 골라 출세시키는 세월 만나 정치판, 영화판, 방송판을 요설로 휩쓸고 다니니 망조지유. 충신은 없고 썩은 고관대작만 득시글하니 역병이 창궐하능규."
―지지율만 치솟더라만. 성군이 났다고 사방에서 노래를 부르더만.
"용돈만 생기면 헤벌쭉해지는 우리 낭군 같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란
증거지유. 나랏빚이 수백 조라는디 텅 빈 곳간서 고생할 손주들 생각하면 잠이 안 와유, 잠이."
―경찰에 잽혀갈 소리 고만허구 내일은 춘천으루 드라이브 워뗘. 막국수도 먹고, 애니메이션 박물관도 가구.
"내일은 안 돼유. '화양연화' 하는 날이라 방구석 1열에 앉아야 해유."
―또 현빈이여?
"유지태라구, 어깨가 인왕산 바위처럼 떡 벌어져 양복발이 천하지제일인 남자."
―그거 성차별이고 인권침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햐.
"꽃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내게도 있었등가. 헤어진 사랑이 목에 가시처럼 아픈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느 날은 바람이, 어느 날은 꽃이, 어느 날은 비가 그 사람 손을 잡고 온다니 가슴이 미어져서 그래유."
―나한테는 그 사람이 바로 임잔디. 술 취한 그날 밤 공무원 시험에 낙방해 눈물 떨구던 내 손을 감싸며 울어준 사람, 세상이 등져도 나라서 함께할 거라 다짐하던 여인!
"그건 김호중이 노래구유."
―그날 결심했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이 여인의 치맛자락만 붙잡고 살리라.
"됐구유. 내일은 애덜한테
보낼 열무김치 담가야 헌께 꼼짝 말구 집에 붙어 있어유. 담북장 끓여서 열무김치에 고추장, 들기름 넣고 양푼에 쓱쓱 비벼줄랑게."
―밥이 하늘이고, 사랑이지. 임자가 나의 우주고, 노아의 방주지.
"아이구, 징해라. 불이나 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