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빌딩 숲을 배경으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싱가포르/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이 전세계 다양한 국가와 계층에서 유행하면서 다양한 윤리적 논란도 함께 불거져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다문화국가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인종이 코로나19에 더 잘 걸리고 더 잘 사망한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조금씩 드러나면서 건강 불평등 논의가 시작됐다. 유럽 등 일부국가를 중심으로 항체를 보유한 개인에게만 통행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논의되고 있는 소위 ‘면역 여권’ 조치나, 백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휴먼챌린지’ 임상시험에 대해서도 윤리적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국내에서는 의료자원을 감염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배치하거나, 공중보건이라는 '대의' 앞에서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를 일부 희생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모두에게 결코 평등하지 않은 바이러스
초여름을 재촉하는 비는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내리지 않지만, 바이러스는 다르다.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 보다 가혹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역시 이런 결과가 속속 관찰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출신지에서 온 인종(ethnicity)으로 구성된 국가에서는 인종별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
차이가 뚜렷하다.
엘리시오 페레즈스테이블 미국 국립소수자보건및보건격차연구소장팀은 11일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 및 사망자가 발생한 수를 비교해 보면 백인 및 유색인 거주자 사이에 최대 2~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미국인, 미국 인디언, 알래스카 원주민 등의 지역별 코로나19 환자 및 사망자 발생률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했다. 거주자 1만 명 가운데 몇 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는지를 출신지나 인종 별로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시카고의 경우, 라틴계 미국인은 인구 1만 명 중 10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925명이, 기타 유색인종은 865명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백인 감염자 수 389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수다.
사망자 수는 차이가 더 컸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피해가 집중됐다. 1만 명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코로나19로 73명이 사망했지만, 라틴계는 36명, 백인은 22명만이 사망했다. 인종에 따라 사망자 발생률이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도시로 꼽히는 뉴욕시도 비슷해서, 라틴계 미국인은 1만 명
중 187명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184명이 사망한 반면 백인은 절반인 93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연구가 처음은 아니다. BMJ는 4월 21일에도 영국 레스터대 병원 연구팀의 기고문을 통해 “영국 내 중증 환자 비유을 살펴본 결과 아시아계 및 아프리카계 영국인의 비율이 인구 비율에 비해 크게 높았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영국국립집중치료감시연구센터(ICARC)의 데이터를 인용해 “영국의 중증환자 2249명 가운데
35.2%가 소수 인종 출신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1년 영국 인구총조사 결과 밝혀진 영국 내 소수인종 인구 비율인 13%를 크게 웃돈다”고 밝혔다.
다양한 이유가 제기된다. 먼저 기저질환 차이다. 페레즈스테이블 소장은 “소수인종은 천식과 심혈관질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당뇨 등 (코로나19 감염시 위험한) 기저질환에 더 잘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감염 단계에서 어떤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바이러스 감염률이나 치명률에 차이를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출신지나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를 고착화해 자칫 인종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생물학적 차이 때문으로 보이는 건강 상의 문제는 상당수가 사회경제적 차별 때문에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다. 비샬 아로라 미국 브리검여성병원 내과 레지던트는 미국 과학매체 '언다크' 기고문을 통해 "어떤 의료 할당 가이드라인이든 사람들의 기저 건강 상태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은 식사나 주거 등 심혈관질환과 만성 폐질환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코로나19 감염 뒤 입원을 해도 인공호흡기를 우선적으로 배정 받지 못하는 차별까지 겪는 이중고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페레즈스테이블 소장 역시 “이 같은 주장은 역사적으로 진행됐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차별과 그에 따른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신체 및 면역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등을 체계적으로 따진 뒤에야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설명은 사회경제적 격차가 감염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다. 캄레시 쿤티 영국 레스터대 병원 교수는 4월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 발표 논문에서 “이들 국가에서 소수 인종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고 더 밀집한 곳에 거주하는 경향이 있어 바이러스 전파에 더 취약했을 수 있다”며 “거주지가 위생 측면에서 취약할 가능성,
저임금의 필수 근무 일자리에서 일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바이러스 감염을 피할 방역조치에서 소외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지역사회 재확산 사태를 불러온 싱가포르가 이런 경우다. 건강보험 가입률, 디지털 정보 접근 환경의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
5월 4일 오후 대구시 남구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서 사진 미디어학과 학생들이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두고 대면 방식으로 실기강의를 듣고 있다. 계명대학교는 지난 3월 16일부터 온라인으로 개강하고 온라인으로 이론 강의를 진행해왔으며 이날부터는 실기 수업이 필요한 사진 미디어학과, 음대, 공대 등 일부 학과의 수업을 대면 방식으로 처음 시작했다. 대학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의무화하고 강의실 또한 사회적 거리 유지가 가능한 곳에서만 수업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제공
●”항체는 새로운 권리?” ’면역 여권’ 도입 논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와 칠레 등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된 개인일 경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보유 여부를 검사해 항체가 있을 경우 활동을 허가하는 일명 ‘면역 여권’ 정책의 도입을 시사했다. 이 제도에 대해서도 생명 및 의료윤리학자들이 검토에 나섰다.
고빈드 퍼새드 미국 덴버대 법대 교수 등은 7일 JAMA에서 “자유와 자율에 대해 ‘최소제약대안(LRA)’ 원칙에 따른다면 공중보건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자유만 침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며 “이 원칙에 따른다면, 이동제한 조치 등 자유를 크게 제한하는 조치보다 제한이 적은 조치가 있다면 이를 채택해야 한다”고 면역
여권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시사했다. 최소제약대안 원칙은 규제 목적에 비해 과도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는 윤리 원칙이다.
패서드 교수는 “이 제도는 가장 적은 보호를 받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윤리 원칙에도 부합한다”며 “모두가 경제활동의 제약 등을 받을 경우 피해는 (사회경제적) 취약층에 더 가혹한 경향이 있는데, 이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운전면허처럼, 안전한 사람만이 활동해 사회 경제적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과 시행 과정에서 불평등이 야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알렉산드라 펠랜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보건과학안보센터 교수는 4일 의학학술지 ‘랜싯’을 통해 “이 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코로나19에 감염되도록 촉진하는데, 이는 감염에 따른 근무 배제 등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제도는 반드시 사회경제적 및 인종적 불평등을 반영하게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항체 보유 유무를 위한 검사가 사회경제적 여건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지 않아 불평등을 재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항체 보유 여부가 또다른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의생명윤리전문가인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항체를 보유한 사람을 우대해 이것이 '새로운 권리'가 된다는 발상인데, 이는 어떤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와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과학적으로는 코로나19에 의해 항체가 얼마나 형성되며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불확실한 정책을 편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면역 여권’은 종종 현재도 시행중인 황열병 등의 예방접종 확인서 의무화 제도와 비교된다. 황열병이 유행중인 일부 열대 국가를 여행하려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제도다. 펠랜 교수는 “하지만 개인과 공중보건상의 위험도, 개인이 동의할 수 있는지 여부, 통제권을 지니는지 여부 등에서
모두 다른 사안”이라며 “예방접종 확인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을 예방하도록 촉진해 사회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내지만, 면역여권은 감염을 촉진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더 센터 포 파마슈티컬 리서치'에서 8일(현지시간) 한 임상 시험 참가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를 주사로 투여받고 있다. 바이오 기업인 이노비오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백신 후보 INO-4800을 검증하는 임상 1상 시험이다. AP/연합뉴스 제공
●인간에게 바이러스 감염시키는 ‘휴먼챌린지’
백신 임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람에게 백신을 투약한 뒤 바이러스를 직접 감염시켜 백신 효능을 보는 휴먼챌린지 임상도 논쟁중이다. 3월 31일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와 니르 리얼 미국 럿거스대 철학과 교수가 학술지 ‘감염병저널’ 기고문을 통해 포문을 열었다. 연구팀은 “휴먼 챌린지 대상자를 현재까지 중증 환자가 별로 없는
젊고 건강한 성인으로 한정하고 자주 모니터링을 하며 최선의 치료를 한다면 위험은 감수할 만한 수준일 것”이라며 “반면 백신의 평가 속도를 높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을 줄이는 등 세계의 (의료) 부담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이언스’ 등 언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실제 임상 기간 단축 효과가 의심된다”며 위험에 비해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5월 초 결국 “연구가 과학적 정당성을 지녀야 하고 잠재적 이익이 위험보다 커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사실상 휴먼 챌린지 임상의 시행에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그 외의 논란들 : 의료자원 배분과 개인정보 보호, 그리고 공리주의
한국에서는 아직 불평등이나 면역 여권 등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류 교수는 “가을에 열릴 한국생명윤리학회 등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다양한 코로나19 관련 윤리 문제를 다룰 것”이라며 “현재 국내에서는 불평등이나 면역 여권 논의보다는 환자 추적 시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의료자원의 배분 문제가 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자원 문제는 집중치료시설(ICU) 등의 의료자원을 코로나19 환자들이 선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묻는 문제다. 국내에서는 신천지 발 집단감염이 일어났을 때 "왜 문제가 된 집단에 이들 자원을 먼저 배분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중 하나였던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의 근거 없는 추천에 의해 일시적으로 품귀현상을 빚고, 이에 따라 정작 말라리아 치료를 위해 이 약이 필요한 저소득국가 환자가 치료제 공급에 영향을 받은 일도 넓은 의미에서 자원 배분 문제 사례에 속한다.
오후 용산구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으로 정부는 4월 24일부터 5월 6일 사이 이태원 인근 업소 방문자 전원을 진단검사 대상으로 정했다. 연합뉴스 제공
류 교수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국내는 공리주의적 시각이 강해서 다른 윤리적 관점은 거의 제시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윤리적 관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공중보건의 달성이라는 목적이 사회 전체에 주는 도움이 크다면 환자의 동선 등 일부 개인정보 침해도 수용해야 한다는 게 공리주의적 관점이다. 최근 클럽 관련 감염이 확산되면서 환자의 성적 지향성과 동선 등이 공개되면서 이렇게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게 옳은지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