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운전때 자동차 앞유리에 수두룩 죽어있던 날벌레 왜 사라졌을까?
獨 과학진 "곤충 年 0.92%씩 감소"… 꽃가루받이 곤충 40% 멸종위기
소금쟁이 등 淡水 곤충 11% 늘어… 미·유럽 등 환경보호 노력의 결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우리 집도 아니고/일가 집도 아닌 집/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아버지의 침상(寢牀) 없는 최후/최후(最後)의 밤은/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시인 이용악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떠나 북방으로 이주했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은 유이민(流移民)을 그렸다. 시에서 풀벌레 소리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쏟아 내는 자식들의 울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풀벌레 소리는 늘 고향의 소리로 묘사됐다. 옛사람들은 집을 떠날 때 고향의 귀뚜라미를 가져다가 머리맡에 두고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식들이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고 있어도 마지막으로 귀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75년이 지났다. 그런데 다시 사람들이 고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고향의 소리를 이루던 풀벌레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일 독일 통합생물다양성연구소 과학자들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곤충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28~2018년 전 세계 41국 1676곳에서 진행된 166가지 곤충 조사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과를 분석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과학자들은 최근 곤충의 대멸종 가능성을 두고 격론을 벌여 왔다. 발단은 이른바 '차 유리 현상(windshield phenomenon)'이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밤에 운전하고 나면
자동차 앞 유리가 날벌레 사체로 가득했는데, 요즘에는 어찌 된 일인지 유리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2017년 네덜란드 레드바우드대 연구진은 곤충 수의 급감이 차 유리창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7년간 독일에서 곤충 개체 수가 무려 75%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곤충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름에는 무려 82%가 감소했다.
독일 곤충 수가 급감했다고
결과가 나오고 나서 다른 곳에서도 곤충 수가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졌다. 반대로 증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히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분석 결과는 곤충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당장 곤충의 대멸종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전 세계 곤충은 매년 0.92%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절대 아니다. 사이언스 논문의 제1저자인 로엘 반 클링크 박사는 "한 세대인 30년을 따지면 24% 감소이고 75년이 지나면 50%가 줄어드는 수치"라며 "매년 차이는 몰라도 어른이 돼 어릴
적 고향으로 가면 엄청난 변화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복되는 해에 봤던 곤충의 절반이 지금은 사라진 셈이다.
곤충이 없으면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곤충은 지구 생명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약 남용으로 새 먹이인 곤충이 사라지면서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날벌레를 주로 먹는 제비나 칼새, 종다리가 급감했다.
곤충의 천적인 거미도
직격탄을 받았다. 스위스 바젤대와 벨기에 헨트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 23일 스위스 중부에서 왕거미집이 1980년대보다 140분의 1로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조사한 지역의 3분의 2에서는 아예 거미집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곤충이 사라지면 인간세계도 무너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꽃가루받이를 벌에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 남용으로 인해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꿀벌이 네 마리 중 한 마리꼴로 사라지는 이른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벌어졌다. 최근
보고서를 보면 꿀벌과 나비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의 4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아직 작은 희망은 남아 있다. 이번 조사로는 소금쟁이처럼 담수(淡水)에 사는 곤충들은 오히려 30년 사이 11%가 늘었다. 연구진은 미국과 유럽에서 호수나 강 등 담수 지역의 환경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곳에 사는 곤충들이 늘어났다고 추정했다. 담수가 육지 면적의 2.49%밖에 차지하지 않아 곤충 개체 수 감소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가능성은 제시했다.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시 새소리가 들리는 봄날 아침과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가을밤을 맞을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