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의 판도를 뒤바꾼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예술품을 하나 고르라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미술사학자, 평론가 등 전 세계의 미술 이론가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 설문조사에서 거의 해마다 1위에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 하나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걸작들을 제치고, 매년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미술계의 이단아로 널리 알려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년)의 ‘샘(Fountain, 1917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떤 연유로 공장에서 생산된 이 하찮은 소변기는 미술품이 됐으며, 또 그토록 높이 평가되는 것일까.
뒤샹도 처음에는 화가로 출발했다. 입체파 계열의 그룹에 가담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가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 descendant un escalier n° 2, 1912년)’라는 작품을 보라.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연속 촬영으로 포착한 에티엔 쥘 마레의 흑백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계단을 걸어내려오는 여인의 동작을 연속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동료들의 강한 거부로 인해 그룹 전시 출품이 좌절되고 만다. 지금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그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동료 화가들에게조차 난해하고 이상한 작품으로 여겨진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 전시해봤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조롱과 비웃음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뒤샹은 예술가들조차 관습과 규율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통과 규칙을 전복할 만한 새로운 개념을 고안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존의 일상 사물을 미술 재료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명명한 ‘레디메이드(readymade)’다.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 descendant un escalier n° 2, 1912년)’.
심혈을
기울여 그린 이 작품의 전시 출품이 거절되면서, 이를 계기로 뒤샹은 새로운 미술 개념을 제시하는 ‘레디메이드’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그 첫 번째 작품은 1913년에 제작한 ‘자전거 바퀴’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그야말로 자전거 바퀴를 갖다 붙인 것이다. 1915년 뒤샹이 뉴욕으로 떠난 후, 오빠의 파리 작업실을 청소하던 여동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쓰레기로 오인하고 내다 버렸다. 미안해하는 여동생에게 그는 “얼마든지 다시 제작할 수 있으니 개의치 말라”고 위로했다. 실제 오늘날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16점의 복제품도 1950~1960년대에 미술관 요청에 따라 그가 다시 제작한 것들이다.
어쨌든 첫 번째 레디메이드 작품은 당시에는 화제가 될 겨를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후 등장과 함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샘’이다. 근처 상점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구입, 제조업체명인 ‘Mott’에서 철자 하나만 바꿔 ‘R. Mutt’라고 서명을 기입했다. 그리고 이것을 1917년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기성품인 소변기를 정면에서 약간 비틀어 진열대에 올려놓고는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작품이라 우기니, ‘관객을 우롱하는 것인가?’ ‘예술가가 서명만 하면 세상 만물이 미술이 된다는 말인가?’ 하는 당연한(?)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R. Mutt는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이름을 딴 가짜 서명이었다. 이 작품이 당시 뉴욕 미술계에 불러일으켰을 반향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일파만파 커져가는 논란 속에 장난 같은 그의
‘샘’이 가져온 파급력은 어마어마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미술사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샘’으로 인해 미술은 ‘창작’에서 ‘선택’으로 폭이 한층 넓어졌다. ‘개념’만 있다면 모든 것이 예술이다! 당시 미국의 한 유명 비평가는 이 작품이 뒤샹의 것이라는 걸 전혀 모른 채 이렇게 옹호했다.
“뮤트 씨가 이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일상용품을 가져다 거기에 뒀고,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해 유용성의 의미를
지웠다. 그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창조한 것이다.”
‘샘(Fountain, 1917년)’.
뒤샹은
시판용 소변기를 구매한 후 ‘R. Mutt’라는 서명을 기입하고, 1917년 뉴욕 앙데팡당 전시에 출품해 당시 미술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이것이 ‘샘’이 미술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핵심 이유다. 만일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없었다면, 워홀의 브릴로 박스나 데미안 허스트의 수족관 속 죽은 상어가 예술이 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예로, 그의 전작 중 지금까지 경매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아름다운
숨결 : 베일에 싸인 물(Belle Haleine : Eau de Voilette, 1921년)’을 보라. 이 작품은 2008년 타계한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방대한 컬렉션 가운데 한 점이다. 2009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에 걸쳐 크리스티 파리에서 열린 그의 소장품 경매에 출품돼 낮은 추정가의
9배에 달하는 890만유로(약 118억원)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됐다.
시판 향수병에 여자 분장을 한 자신의 흑백사진(만 레이 촬영)과 작품 제목을 정성껏 써넣은 라벨을 붙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1920년부터 그는 로즈 셀라비(Rrose Selavy)라는 여성 자아를 창조해 작품을 발표하고는 했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뉴욕에서 명성을 얻을수록 그는 타인이 자신을 ‘뒤샹’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본다고 느꼈다. 이에
새로운 예술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예명을 찾던 중 문득 ‘왜 여자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그때부터 여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적극 활용했고, 때때로 예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미술계의 문제아다운 자유로운 발상이 아닌가.
‘아름다운 숨결 : 베일에 싸인 물(Belle Haleine : Eau de Voilette, 1921년)’.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 2009년 2월 크리스티 파리에서 열린 그의 소장품 경매에서 890만유로(약 118억원)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됐다.불어를 아는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로즈 셀라비라는 이름도 이중적이다. 로즈에 의도적으로 ‘r’을 두 번 넣음으로써, 장미면서 동시에 발음으로 인해 ‘에로스’를 연상하도록 했다. 셀라비는 불어로 ‘그것이 인생이다’와 동음어. 이처럼 뒤샹은 평소 동음이의어 같은 말장난을 즐겼는데, 이는 무엇이든 하나의 의미에 고정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예술철학과 맞닿아 있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모든 것의 의미가 미끄러지듯 달라지며, 그런 창조적 관점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숨결’의 병 속 향수는 세월과 함께 이미 다 증발해버렸지만, 오늘날에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모두 현재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뀔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변기를 ‘샘’으로 바라본 뒤샹 같은 발상의 전환과 유연한 사고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