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민 음악평론가
사람들은 20세기 즈음 시작된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을 어려워한다. 아름다워 계속 듣고 보고 싶은 게 예술인데, 두 장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음악은 소음 같아 왜 듣는지 모르겠단다.
현대음악 강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다. 30대 작곡가 두 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연에 앞서 작곡가·지휘자와 함께하는 일종의 토크 콘서트였다. 갓 태어난 곡이니 그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이는 한 명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의엔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모두 현대음악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습하는 장면을 틀어 작품 분위기를 짐작게 하고, 작곡가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손톱으로 내부의 현을 긁어내며 묘한 소리의 원천을 공개했다. 한 시간으로 예정된 강의였으나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작품의 안내자와 사용설명서가 됐다.
음악가들 스스로 '클래식은 어려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연주하는 이들도 그러한데 현대음악은 오죽할까. 그럴 때 필요한 게 해설이다. 공연장 프로그램북에 적힌 해설이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딱딱한 글보다 연주자의 설명을 더 좋아한다. 제품에 대한 무미건조한 사용설명서보다 입체적인 해설과 사용 후기가 담긴 유튜브 영상을 선호하는 심리와 같다. 정보가 많지
않은 현대음악이라면 해설은 더욱 필요하다. 해설을 통해 '소음' 속에서 '의미'를 본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음악가들은 음악이 말이 필요 없는 추상예술이라며 해설을 꺼린다. 그러나 내가 만난 작곡가 중 자기 작품을 설명 못 하는 이는 없었다. 예전에 해외에서 본 현대음악 연주회에선 신작을 해설과 함께 한 대목씩 선보인 뒤 전체 연주에 들어갔다.
서양음악은 고전·낭만·현대음악 순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유입될 땐 그 순서를 따르지 않고 우후죽순 들어왔다. 1930년대에는 연주보다
신문·잡지를 통한 음악 소개와 해설만 있었다. 지금은 흥미로운 현대음악은 많은데 그에 걸맞은 해설과 안내 문화가 없다.
[송현민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