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욕망은 이성을 자극하지만, 탐욕은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
강남 사는 동창 A에게. 자네가 태영호 찍었다는 얘기를 B에게 전해 듣고 놀라워서 편지를 쓰네. 태영호가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자네는 한마디로 ‘개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4년 전 자네의 열변을 아직 기억하네. “자유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북한이 자유 없는 사회라고 하지만, 실은 자유 없는 사람과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사회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도 한정된 자원이다. 태영호는 북한에서 최대의 자유를 누렸던 사람이다. ‘자유가 부족해서’ 목숨을 걸었을 리 없다. 게다가 그가 가진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미국에 망명하는 게 나았을 거다. 굳이 남한행을 택한 걸 보면, 국제 기준에서 ‘망명’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파렴치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태영호의 망명 동기에 대한 자네 판단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 이 얘기는 관두세. 문제는 태영호의 형제와 친척들이 여전히 북한 최고위층에 있다는 사실이네. 탈북민들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 서신을 교환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사실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평범한 탈북민이 그러는 거야 인도주의 차원에서 묵인한다 해도, 국가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게다가 태영호의 위상과 이용 가치가 달라졌으니, 북한에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네. “북한에 친척이 있는 사람은 일단 의심하라”는 건,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 온 간첩 식별법 아니던가? 평소 안보를 무엇보다 중시했던 자네 소신에 따라 판단해 보게. 태영호에게 면책 특권과 기밀 정보 접근권, 기타 국회의원의 특권을 온전히 허용하는 게 옳다고 보는가? 그랬다가 ‘안보’에 위험이 생기면 어떻게 할 텐가? 물론 법으로 인정된 국회의원의 특권을 태영호에 한해 박탈할 수는 없네. 태영호의 국회의원 활동을 보장하면서도 ‘안보’ 위험요소를 배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자네가 국정원장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게. 태영호의 정보 입수를 통제하고 국내외에서 그와 접촉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게 ‘정치 사찰’인가, 아니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직무유기’인가? ‘안보’를 가장 중시하는 시민으로서 대답해 보게. ‘안보적 관점’에서 그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가 ‘방역적 관점’에서 ‘감염 의심자’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와 달라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국회의원으로서 취득한 기밀 정보가 제2, 제3, 제4차 전달자를 통해서 북한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태영호가 만약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면 자네는 뭐라고 할 건가? 30년 가까이 조선노동당 핵심 당원이었던 사람이 잠시 미통당 당적을 가졌다고 해서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가? 개인 태영호와는 달리 국회의원 태영호는 비서진과 지구당 당직자 등 여러 명을 움직일 수 있네. 국회의원 태영호의 비서들과 미통당 강남 지구당 간부들이 어떤 정보를 입수해서 누구에게 전달하는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만에 하나 태영호 비서가 중국에 출장 가서 북한과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데도 한국 정보기관이 모른다면, 자네는 뭐라고 할 텐가? ‘안보 무능 정권’이라고 펄펄 뛰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나라의 ‘안보’에 심각한 부담을 준 건 바로 자넬세. 자네도 알다시피 건설업 하는 우리 동창 C는 국회의원을 자주 만나야 했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정보기관이 감시할까 봐 부담스러울 거고, 부담감 없이 만난다 한들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자네가 종부세와 재개발 문제 때문에 정부 여당을 증오하는 건 이해하네. 그런데 태영호에게 이들 문제에 관한 어떤 ‘전문성’이 있는가? 그가 자본주의 국가의 재정이나 부동산 문제에 식견을 쌓을 시간이 있었는가? 그가 쟁쟁한 전문가들이 모인 국회에서 종부세나 재개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자네 같은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해 종부세나 재개발 문제와 관련한 ‘강남구민’의 국회 내 발언권은 0에 수렴해 버렸네. 한국인 평균보다 가방끈이 훨씬 길고, 수십 년 남들을 가르치면서 살아온 자네가, 늘 남달리 날카로운 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자네가, 뻔히 보이는 앞날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이유가 뭔가? 비싼 집에 산다고 은근히 뻐기면서도 종부세 욕하는 자네는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태영호에게 투표한 자네는 이해할 수 없네. 민주당은 부자이자 지성인인 자네를 부자이자 지성인답게 대우한 걸세. 오히려 자네같은 부자이자 지성인을 ‘아무나 내세워도 찍어주는’ 노비이자 멍청이로 취급한 건 미통당일세. 누구에게 더 분노해야 하는지를 몰랐다면, 자네는 정말 멍청이일세. 자네는 정부 여당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자네같은 사람들이 전 국민에게 실제로 보여준 건 '안보 강조는 핑계일뿐'이라는 '본심'일세. 강남구민들의 선택을 비판하는 건 ‘탈북민 혐오’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꽤 많다네. 태영호가 굶주림을 못 이겨 탈북한 ‘보통의 탈북민’이라면, 그의 형제와 친척들이 북한 최고위층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보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자네가 ‘탈북민 혐오 반대’라는 팻말로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멍청이다움’을 숨길 수 있는 건 아닐세. '부자와 지성인들의 동네' 강남을 ‘노비와 멍청이들의 동네’로 만든 건, 그 누구도 아닌 자네처럼 '영향력 있는' 지역 명사들일세. 인문학자로서 자네에게 충고 한 마디만 하겠네. “건강한 욕망은 이성을 자극하지만, 탐욕은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 9.8천9.8천 댓글 31개 공유 2.9천회 좋아요 공유하기 댓글관련성 높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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