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0.05.19ⓒ정의철 기자
[인터뷰] ‘속도’ 이재명이 밝힌 경기도 초고속 행정의 비결
코로나19 감염 사태는 방역과 의료를 넘어 전 세계에 걸쳐 사회 전반을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재난은 소수에게는 기회일 수 있으나 다수대중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위기이다. 위기는 감염병뿐만 아니다. 성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시민들에게 바이러스보다 심각한 재난이다. 재난의 시대를 함께 넘기 위한 슬기로운 해답을 내놓는 것이 이 시대 정치의 가장 긴요한 과제다. 변방의 장수로 진보와 변화를 촉구하다 1300만 도민의 큰 머슴이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 19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만나 들어봤다.
당장 눈앞의 재난은 코로나19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나라는 큰불은 껐고 경기도 역시 방역에서 시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재명 지사는 “집단감염 문제는 공공안전의 문제인 동시에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라면서 “메르스 사태를 겪을 당시 제가 비난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때의 신속한 대처와 정보공개 등은 이후 모범답안처럼 채택됐다”고 말했다.
감염 확산이 한풀 꺾이고 등교 개학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태원 사례처럼 위험은 상존한다. 이 지사는 감염 확산이 한차례 누그러진 4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감염폭발을 애써 부인하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맞닥뜨리고 대비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지사는 당시의 우려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답했다.
“속도가 빠르고 무증상 감염이 가능한 특성 때문에 어디서 확산되고 있는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조금만 관심을 떨어뜨리거나 안일하게 대응하면 언제라도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비록 초기에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도 세계와 철저하게 연결된 일부다.,
우리만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든지 파도는 다시 몰려올 수 있고 그 파도가 방파제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현재 시스템으로 통제하겠으나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쉽지 않을 수 있다.”
투철한 현실주의자다운 면모가 느껴지는 진단이었다.
감염병과 함께 닥친 경제 재난
정부 재난지원금의 마중물이 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영세 자영업자 지원 효과도 입증됐다
파도치듯 하고 있지만 방역은 ‘긴장 속의 안정’ 상태를 유지한 채, 3개월째 매출이 0에 가까운 업종이 속출하면서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 이 지사는 안팎의 우려에도 도민 1인당 10만원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관철했다.
“가용 재원을 검토해보니까 도민 1인당 4만 5천원 정도 가능했다. 금액도 너무 적고 재원을 뿌려서 다 없애는 거 아니냐, 저희도 걱정했다. 아마 기재부 관료들 걱정과 비슷했지 않았나 싶다. 그때 중앙정부에서 어떻게든 지원을 빨리해라, 지원하면 추경으로 보전해주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얘기해서 용기를 내서 일반기금에서 7천억원 정도 더했다. 사실상 내부적으로 빌린 빚이다. 그래서 10만원을 지급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지급은 정부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마중물이 됐다. 그야말로 유사 이래 처음으로 중앙과 지방정부가 국민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떨쳐나섰다. 정부와 달리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인 것은 이 지사의 오랜 소신에서 비롯됐다. 이 지사 역시 “재난에 한 번 주는 것이니 기본소득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지급을 통해 기본소득의 효용성이 널리 알려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것(기본소득 지급)을 복지정책으로 접근하지 않고 경제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역은 방역대로 한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를 맞고 있는 데 그 원인이 무엇이냐. 과거처럼 생산역량을 확충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과거엔 투자를 확대하면 고용이 늘고 이어
소비가 늘고 다시 수요가 늘고 생산이 늘어났다. 낙수효과다.
최근에 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수요가 무너지고 유통이 무너졌다. 그 말단에 있는 영세자영업자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자금경색으로 기업이 쓰러지지 않게 막는 것은 금융정책으로 충분하고, 핵심 재정정책은 소비의 진작, 영세자영업자 보호여야 한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3개월 기간을 설정하니 필요한 곳에 쓰게 되고 돈이 돌게 된다고 설명했다. 재난기본소득이 지역화폐와 맞물리면서 효과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재난기본소득의 효과는 통계로도 직·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4월 9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경기도는 도내 신용카드 매출이 4월 13일에 전년 동기 대비 95%로 회복됐고, 4월 마지막 주에는 100%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집계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 84%, 부산 91%보다 높은 회복률이다.
또한 신한카드가 3월 1주차 재난기본소득을 취급하는 경기도 가맹점 매출을 100%로 놓고 비교한 결과 4월 1주차에는 108%, 2주차에는 107%, 3주차에는 122%, 4주차에는 124%의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4월 4주차 서울과 6대 광역시 카드 가맹점의 매출은 3월 1주차와 비교해 117%에 해당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가맹점 매출 증가폭이 7%포인트 더 높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0.05.19ⓒ정의철 기자
앞으로의 재난은 결국 일자리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한다는 4차산업혁명은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으며 비대면도 주요 항목으로 포괄했다. 점점 더 빨라지는 일자리 축소는 코로나를 능가하는 공포이자 재난이다. 이 지사는 ‘일자리 축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사회로 가고 있는데 4차산업혁명이 진척되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더 이상 노동이 생존의 수단이기 어렵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유형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분야에서 1인당 50만원 정도 주는 일자리를 늘려 지역 문화사업을 활성화하고, 나머지 50만원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보충해 부부가 200만원 정도로 생활할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다.
다가오는 일자리 재난도 기본소득으로 넘어야
단계적 실현 방안으로 현실 가능성 높아져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야
이 지사의 기본소득 구상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참여했던 스타트업 사업가 앤드루 양 등 기본소득론자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 지식인이나 정치인들 안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가이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이나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무엇이고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전 국민에게 체감시키는 학습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코로나19가 기본소득 논의를 몇 년 앞당기는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예를 들면, 태어나서 처음 나랏돈 받아봤다는 반응이 SNS에 쏟아졌다. 이 지사도 “기본소득 하면 포퓰리즘, 퍼주기, 표 얻기, 심지어 사회주의 공산주의까지 생각했는데 그런 부정적 사고를 많이 털어낸 것 같다”면서 “국민들 속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야 한다. 이 지사는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원형으로 ‘단계적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이번에 정부에서 대략 1인당 20만원 정도 줬다면 이걸 1년에 두 번, 세 번, 네 번, 여섯 번, 이렇게 늘려가고 금액도 조금씩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안이라면 초기단계에는 현재 재정 구조 안에서 가능하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세금이 내게 돌아온다는 신뢰를 얻으면 이후 탄소세, 국토보유세 등 목적세를 만들어 재원을 마련하자고 이 지사는 제안했다. 이전의 저서에 밝힌 것처럼 세금에 대한 효용감과 신뢰를 먼저 얻고, 이를 바탕으로 증세를 하자는 전략이다. 증세 대상도 환경훼손의 반대급부로 이윤을 내는 기업, 부동산을 이용한 초고소득층 등에 맞추자는 구상이다. 이 지사는 최종적으로 1인당 매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의 기본소득을 실현하자는 목표도 내놓았다.
기본소득이 미래의 재난을 대비하는 것이라면 당장 우리사회의 가장 큰 상시적 재난은 산업재해다. 최근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화재 참사에서 보듯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위배한 작업으로 초래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14세에 소년공이 된 이 지사는 손가락, 팔, 귀, 코(후각) 등 여러 곳에 산재를 당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산재에 대해 이 지사는 “규정을 위반하고 사람을 위험에 빠뜨려 이익을 얻는 주체와 위험이 현실화 됐을 때 책임지는 주체가 다르다”고 짚으면서 “형사처벌도 현장 관리자가 받고, 배상도 산재보험 등으로 거의 처리되고, 사업자가 책임지는 것은 위자료 정도”라고 지적했다. 미국식 징벌적 배상을 도입해야 ‘돈이 아까워서라도’ 안전 법규를 지킨다고 이 지사는 강조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징벌적 배상은 산재가 날 때마다 거론되지만 입법은 ‘부지하세월’이다. 이 지사는 당장 할 수 있는 대안으로 근로감독관 확충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근로감독 권한 공유를 촉구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0.05.19ⓒ정의철 기자
“사업장이 500만개쯤 되는데 근로감독관이 3천명이 안되고, 산업안전 담당은 800명 정도다. 1인당 사업장 수천, 수만 개를 맡고 있는데 어떻게 감독하겠나. 일자리 늘린다고 돈 많이 쓰는데 산업안전 공무원 늘리는 게 왜 잘못이냐.
또 지방정부라도 단속할 수 있게 허용해줘야
한다. 우리는 눈에 뻔히 보이는데 권한이 없으니까 업체에 법 지켜달라고 협조요청 하는 게 전부다. 사업장도 함부로 못 들어간다.”
이와 관련 이 지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근로감독관 명칭 노동경찰로 변경, 노동경찰 증원, 노동경찰 권한 지방정부 공유” 등의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지사는 “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생산부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동이 인간이 존귀한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사회적 효율도 올라가고 비용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불안하지 않고 행복한 삶도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비단 이천 화재 참사만이 아니라 재난을 넘어서기 위한 우리 사회의 기본인식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현재의 재난은 물론 다가오는 더 큰 재난을 우리 사회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는 해법을 통해 슬기롭게 넘을 것인가. 아직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