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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뉴욕주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확산 범위와 면역 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항체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4월 초 항체 형성 여부를 통해 재감염에 ‘면역’을 획득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뜻에서 ‘면역여권’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감염률과 항체 형성 규모를 밝히기 위한 항체검사를 시작한 가운데, 국내 방역당국도 항체검사의 필요성에 일부 공감하고 검사 방법을 검토하고 나섰다. 다만 일부의 우려와 같이 환자 확진 판정을 위해 검사를 위해 활용하거나 방역정책을 결정할 용도로는 사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은 27일 오후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개최한 정례 브리핑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있던 대구 경북 지역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감염률을 보이고 어느 정도 항체가 형성됐는지 집단면역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어느정도 샘플을대상으로 테스트를 할지 또 정확하게 항체를 평가할 검사법이 무엇인지 내부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항체검사는 혈액을 뽑아 액체 성분 안에 녹아 있는 항체를 검출하는 ‘혈청검사’의 일종이다. 바이러스 등 감염병에 걸리면 체내에서 이를 막기 위해 형성되는 이뮤노글로불린M(IgM), 이뮤노글로불린G(IgG) 같은 항체를 검출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면역 형성 여부를 간접 확인한다. IgM는 감염 초기 면역 반응에, IgG는 감염 전반의 면역 과정에는 관여한다.
항체검사는 10분 정도면 결과를 알 수 있어 빠르지만, 병원체의 유전물질(RNA)를 직접 증폭해 검출하는 현재의 확진법인 역전사 실시간중합효소연쇄반응(RT-PCR)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경우 감염 뒤 약 일주일~10일 뒤부터 항체가 형성되기 시작해 방역에 특히 중요한 초기 감염자를 발견할 수 없어 전세계적으로 확진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정 본부장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역시 항체 신속진단키트를 허가하면서(아래 사진) 환자 확진 검사용으로는 쓰지 않고 보조용으로 사용하고, 자가진단보다는 검사실이 있는 곳에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24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일반 감기 등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는 경우 코로나19 항체검사에서도 항체가 검출되는 ‘교차 반응’이 있을 수 있다”며 부정확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신 빠르게 많은 환자를 검사할 수 있고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완치된 사람의 비율도 알 수 있어 지역사회 감염 패턴과 면역 형성률 등 바이러스의 역학적 측면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구지역 헌혈혈액 검체를 확보하고 있고 국민건강영양조사 같은 전국을 대표로 하는 대표 건강조사와 연계한 검사를 기획해 검체를 확보하고는 있다”며 “지역의 상황을 좀더 볼 수 있는 표본을 확보하고 정확한 검사법을 확정한 뒤에 조사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수출용으로 허가를 받은 항체검사키트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수출 허가를 받은 항원 항체 신속검사키트는 개별(진단)용”이라며 “대량의 검사를 할 수 있는 항체검사법이나 시약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며 현재 어떤 검사법을 적용해 시행할지 등 전문가와 검토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뉴욕주 3000명 항체검사 실시...인구 14% 감염 추정...WHO "방역정책 활용은 안 돼"
현재 항체검사를 가장 공격적으로 하는 곳은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뉴욕 주다.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의 지시로 지난주 이틀에 걸쳐 주 내 5개 도시 40곳에서 300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항체검사를 했다. 그 결과 뉴욕시에서만 21%의 사람에게 코로나19 항체가 발견됐다. 롱아일랜드는 17%, 웨스트체스터주는 12%였고, 나머지 주는 4% 수준이었다. 뉴욕주 전체로는 약 14%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1945만 명에 이르는 뉴욕주 전체에서 약 270만 명이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관련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달 27일 현재 뉴욕 주의 코로나19 환자 수는 29만 3991명이고 사망자는 2만 2275명으로 환자 대비 사망자 수의 비율인 치명률은 7.6%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 주민의 21%가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감염됐다면 치명률은 1% 미만으로 크게 낮아진다.
쿠오모 주지사를 비롯해 일부 정책 당국자들은 이렇게 조사한 감염 규모와 항체형성률을 바탕으로 방역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WHO는 증거가 없는 발상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쿠오모 주지사는 “검사를 통해 인구 중 감염률이 높은 지 낮은 지 알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이동제한 조치를 해제할지 여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제한 조치를 풀었는데 감염률이 올라갔다면 해제를 늦추는 식으로 방역조치에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부 국가는 나아가 항체검사를 통해 항체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감염 위험이 없어 이동의 가능하다는 ‘면역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WHO는 “항체 형성이 코로나19 감염 뒤 회복을 한 것이라는 증거도,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으로부터 보호 받는다는 증거도 없다”며 “항체검사를 통한 면역여권은 감염 위험을 높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WHO는 대신 이달 초 전세계적인 항체검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대2'라고 이름 붙은 이 프로젝트는 무증상 또는 경증 환자를 포함해 인구집단에 널리 퍼진 감염 환자를 찾아 정확한 바이러스 역학 특징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바이러스 재감염 가능 여부, 백신을 통한 예방 가능성 등도 파악한다.